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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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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59 좋아요 2 2018-03-22

완벽주의를 위한 채찍(whiplash)
영화 [위플래쉬] 에서는 Good job?, Perfect Job?

 

 

이미지출처: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위플래쉬'

 

“플렛처 아래서 자신의 밴드는 우승을 하면 하지 준우승에 머무르지 않는다” 플렛처 교수의 완벽주의를 나타내는 단적인 표현이다. 이 같은 자신만의 철저함이라는 원칙아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과 폭언, 폭행을 휘두르며 Perfect를 요구. 결국, 제자로 하여금 잔인한 죽음으로까지 밀어붙이는 플렛처의 끔찍한 지배욕은 아이러니하게도 갓 입학생 햇병아리 앤드류로 하여금 드럼의 장인을 꿈꾸도록 만든다.

 

영화속으로~ 

 

  

이미지출처: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위플래쉬'

 

앤드류는 아버지와 함께 영화보기를 즐기고 아르바이트 여대생에게 수줍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평범한 대학 신입생이다. 앤드류는 명문 음악학교 셰이퍼 음악학교에 입학했지만 별로 유명하지 않은 밴드에서 메인 드러머의 악보나 넘겨주는 보조 연주자에 불과하였다. 이런 앤드류에게 플렛처는 ‘잘하고 있다. 제 2의 버디 리치가 될거다’ 라고 칭찬을 해주며, 셰이퍼 음대생이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하는 플렛처 교수의 밴드에 합류시키게 된다. 그러며, 영화는 플렛처 교수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며 점점 치열하고 완벽성을 추구하는 결벽주의자가 되어가는 앤드류의 과정을 묘사한다.
그 다음으로 플렛처 교수가 선택한 방법은 메인과 보조자리를 두고 3자가 경쟁을 펼치는 구조. 이때, 앤드류는 손바닥에 피가 떨어지는 고통을 감내하고서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오로지 정확한 박자를 맞추기 위한 완벽함을 위해서~

 

결국, 영화의 후반부에서 플렛처는 옛 제자의 자살사건으로 학교에서 물러나며 앤드류는 플렛처에게 주먹을 날린 대가로 제적을 당한다. 그리고, 재즈 까페에서 우연한 만남. 플렛처는 앤드류를 음악계에서 퇴출할 계획으로 일부러 생소한 곡을 밴드 합주곡을 선택하여 앤드류로 하여금 연주를 망치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 이후 영화의 결말, 앤드류가 진화를 이루어낸다.


앤드류를 ‘엿 먹이기’ 위한 플랫처, 하지만 앤드류의 진화를 이루어내다 

 

 
이미지출처: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위플래쉬'

 

완벽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데이트할 시간조차 낼 수 없다고, 어렵게 사귄 여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선언하는 완벽주의에 물들어버린 앤드류의 변화는 훗날 플랫처럼 변해버린 앤드류를 상상하게 만든다. 연주회에 늦지 않기 위해, 교통사고가 난 이후에도 피를 흘리며 콘서트홀로 달려가는 앤드류의 괴기스러움은 더욱 플랫처 교수와도 닮아있다.


우연히 만난 재즈카페에서 "라이언~ 너를 자극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어" 라는 표현도 결국은 앤드류에게 복수를 위한 플랫처의 거짓말이었다. 어렵게 달려온 앤드류에게 플랫처는 일부러 생소한 곡을 밴드 합주곡으로 선택하여 앤드류로 하여금 초반 연주를 망치도록 한다. 플랫처의 시나리오대로라면 크게 실망한 채 무대를 벗어나서 앤드류 본인의 무능함을 느끼며 망가지는 삶이였으리라~. 여기까지는 플랫처 교수의 승리였다.


 

하지만, 앤드류는 갑자기 무대로 발길을 돌려 이제까지의 모든 서러움과 모욕, 연습과 고통으로 빚어낸 최고의 연주를 해내고야 만다. 왠지 이 장면에서 완벽함 후에 따라오는 욕심이 부르는 정신착란과 불안감, 파멸의 ‘블랙스완’ 영화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과연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 나의 욕구인지? 아니면 사회적(부모나 교사 등) 존재들에 의해 심어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무작정 ‘완벽을 위한 열심’보다 먼저 필요한 요소이다.


 

앤드류가 본인이 하고 싶은 열정으로 고통을 뚫고 만들어낸 Perfect라면 다행이지만, 플랫처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욕에서 나온것이라면, 이것이 과연 Perfect job라 할 수 있을까?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사회에게 던지는 영화의 주요 메시지일 것이다.

 

완벽주의는 결국, 누구나 ‘루저’! 행복한 돌연변이 필요~ 

 

 
이미지출처: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위플래쉬'

 

최근 직장인 1,176명을 대상으로 완벽주의에 대해 설문조사 한 결과 '직장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 67.2%를 차지했다. 또한 '완벽주의가 업무성과를 높인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는 '그렇다'는 응답이 전체 61.3%로 가장 많았다.

<심리학 오늘> 1980년 11월호에서 번즈 박사는 완벽주의자에 대한 정의를 아래와 같이 내렸다.
첫째, 지나치게 높은 기준
둘째, 달성하기 불가능한 목표로 끊임없이 강박적인 애를 쓰는 사람
셋째, 주로 자신이 성취한 것을 통해 자기가치를 평가한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는 결국 자기 패배로 이어져 ‘루저’가 된다.

 

박진영 작가는 <심리학 일주일>에서 "’과하게 성취하는 경향over-earning'은 그릇된 목표 설정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이는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는데도 마치 노력 중독자처럼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분명한 기준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서 생기는 문제다"라고 이야기했다.

 

최근의 모 드라마에서의 법조 명문가에 들어간 평범한 며느리를 빗대어 행복한 돌연변이라고 표현했다. 무조건 최고를 지향하며 집단 내 동질성을 강조해 완벽주의를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자신만의 라이브한 의사결정과 표현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며, 결국 최고의 집단 내에서도 ‘루저’라는 자기패배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성과 자율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유연성과 순발력이 길러지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가 일어나 융합이라는 확장된 문화마저 형성된다.

Perfect의 기준~! 누구를 위한 Perfect인지, 되도록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만족을 이루어내는 Perfect 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