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HOME > 심리 > 미디어 속 심리

미디어 속 심리

영화·드라마·서적 등 미디어 속의 심리 인사이트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조회수 395 좋아요 1 2019-07-10

너는 친절하고 똑똑하고 소중한 사람이야

차별에 맞서는 그녀들의 당당한 저항 <헬프>

 

 

 

영화 헬프(Help)’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흑인 가정부들이 당하는 차별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인종 문제가 아닌 계층, 연령, 지역과 맞물려 그들이 얼마나 부당한 삶을 살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상을 바꾸려던 용기 있는 고백과 목숨 걸고 맞서야 했던 애환의 나날 속으로 돌아가 본다.

 

 

희망 없던 삶에 한 줄기 빛이 찾아들다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당연한 듯 가정부의 삶을 살고 있는 흑인 여성 에이블린. 지금껏 17명의 백인 아이들을 키워냈지만 정작 친아들이 백인 때문에 죽어갈 땐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힘없는 존재였다. 또 다른 흑인 가정부 미니는 태풍이 몰아치던 날 집 밖에 있는 흑인 전용 화장실이 아닌 실내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당시 흑인들은 백인과 함께 식사할 수 없었으며 식기도 구분해 사용해야 할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았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병균 취급하고 조롱하는 백인의 괴롭힘 속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인 여성 스키터를 만나며 변화의 조짐이 움튼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편히 사는 걸 성공으로 여기던 그 시대 여자들과 달리, 스키터는 유명 대학을 졸업한 후 신문사에 취직해 살림 칼럼을 대필하는 신여성이었다.

에이블린의 도움으로 칼럼을 쓰던 스키터는 점차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 흑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들이 겪는 부당함을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한다.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같은 유명인사도 암살당하는 마당에 흑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니. 에이블린과 미니는 질색하며 거절한다. 하지만 계속된 스키터의 진심어린 설득에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용기가 만들어 낸 '자유'라는 값진 가치

 

그렇게 시작된 폭로전. 처음에는 보복을 겁내던 다른 가정부들도 백인들의 행태에 진저리치며 하나 둘 가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사연들은 헬프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흑인 가정부들이 받은 차별은 널리 알려졌고 에이블린과 미니는 많은 수임료까지 받게 됐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다니는 차별은 여전하다 못해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스키터마저도 흑인들과 함께 책을 썼다는 이유로 주변인들에게 비난 받는다.

 

책 제작에 참여한 것을 들킨 에이블린은 도둑 누명을 쓰고 일하던 집에서 쫓겨난다. 그 때 에이블린은 백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쏘아붙인다.

늘 거짓과 협박을 일삼는군. 당신, 지겹지도 않아?”

누군가는 저게 뭐 그리 대단한 말이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백인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말대꾸를 하지도 못했던 그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돌보던 백인 아기를 따뜻하게 안아준 뒤 집을 떠나는 에이블린. 평생 다른 꿈은 가져본 적도 없던 에이블린의 오랜 가정부 인생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그게 쉽진 않겠지만 진실을 말하는 게 그 첫걸음일 수 있다. 내 삶이 어떤지 그 전에는 아무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진실을 말한 후 나는 자유로워졌다.”








우는 아기를 뒤로한 채 걷던 에이블린의 독백에서 비록 일자리는 잃었어도 백인들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낸 후련함이 묻어난다.

그녀가 자신이 돌보던 아이들에게 늘 해주던 말, 너는 친절하고, 똑똑하고, 소중한 사람이야.” 그저 엄마의 사랑을 못 받는 외로운 백인 아이에게 해주던 위로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소외된 자신에게 간절한 한 마디가 아니었을까.

 

존재만으로도 위협받는 시대에 목소리를 낸다는 건 상상보다 더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맞서 싸운 그녀들의 용기로 세상이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며 쉽게 포기하고 합리화하지만 그런 마음으로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언젠가 큰 용기가 필요할 때 세 여자처럼 신념을 발휘해보자. 혹시 아나, 또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